역사 이야기/한국사&세계사

[논란의 한국사] 세종대왕이 시행했던 노비종모법에 대하여.

가론 2023. 10. 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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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님, 이 분이 안계셨다면 한글도 창제되지 않아 지금 이 글도 영어나 한자로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희대의 명군에 대한 논란이 몇년 전 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종대왕이 조선을 노비 국가로 만들었다"라는 몇몇 사람들의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노비정책,

"노비종모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에서 조선 초기까지의 노비제도에 대하여.

고려시대의 가장 잘 알려진 노비제도는 고려 10대왕 정종 때 법으로 제정된 "천자수모법"입니다. 천자수모법은 "천민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노비 모친의 주인이 자식의 소유권을 갖는다" 라는 의미로 결국 노예의 소유권에 대한 법이죠. 이후, 고려 25대 충렬왕 때는 "일천즉천"이라는 노비제가 시행됩니다. 말 그대로 부모 한명이 천인이라면 자식은 무조건 노비가 되는 것이죠. 무신 정권 이후 실권을 잡은 권문세족들이 가진 대토지를 운영하기 위하여 노비 숫자를 늘리기 위한 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죠. 조선의 초대왕 태조 이성계 때 까지만 하더라도 일천즉천이 시행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후, 조선의 3대왕 태종 이방원 대에는 "노비종부법"이 제정됩니다. "노비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면 아버지의 신분을 따른다"라는 뜻입니다. 노비는 소유물로 취급되어 군역의 의무가 없고 세금도 내지 않으므로 국가재정 확보에 혈안이었던 태종에게는 노비의 숫자가 많은 것이 절대 득이 아니었기에, 양인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태어날 자식의 신분을 염려하여 노비 여성이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양민이나 양반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은 후, 의도적으로 태어날 자식의 신분을 높이는 등의 폐단이 발생하여 조선 4대왕 세종 대에 맹사성과 허조가 이를 지적하였고, 그들의 지적과 주장을 반영하여 제정된 노비제도가 바로 "노비종모법" 입니다.

노비종모법이란 무엇인가?

노비종모법은, 쉽게 말하면 "노비의 자식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른다" 라는 뜻입니다.

고려의 천자수모법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맥락이 다르죠. 노비종모법은 어머니의 신분이 노비가 아니라면, 자식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노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노비종부법의 폐단을 막기 위하여 반대되는 격의 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다만, 고려의 천자수모법과 같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여노비를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게 하여 태어날 자식까지 자신의 노비로 소유하려는 악랄한 소유주가 존재했을 것이고, 이 또한 폐단이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노비제도는 점점 변화를이루었고 이 또한 태종의 노비종부법 처럼 초기 국가에서 발생한 시행착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봅니다.

노비종모법 때문에 노비 숫자가 늘어났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남존여비의 시대상을 반영하면 노비종부법보다 노비의 숫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노비제도이지만, 노비 숫자를 늘리기 위한 의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노비 숫자를 늘리는 것에 혈안이었다면 일천즉천을 다시 활용하면 그만이었겠죠? 단지, 노비종부법의 폐단을 막기 위해 시행된 법일 뿐으로 보이며 노비 숫자가 늘어난 것은 시대상에 따른 부작용 정도라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이는 현대의 잣대로,신분제가 철저했던 왕정국가 시절에는 딱히 부작용이라 볼것도 없긴 하죠.)

노비종모법으로 세종대왕이 비난 받는 것이 맞는가?

글쎄요, 물론 태종 대보다 노비의 숫자가 늘어날 수 없는 법이지만, 비난의 대상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노비종모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조선의 7대 왕 세조 대에는 계유정난의 공신들이 하사 받은 대토지의 관리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일천즉천이 다시 시행되었는데, 어째서 노비를 늘리기 위한 일천즉천을 다시 꺼내 든 세조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고, 세종대왕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인지 말입니다.

 

어떤 법이던 완벽한 법은 없습니다. 노비종모법과 반대인 노비종부법 마저도 위에서 언급한 폐단이 있었고, 이는 서자(양인 첩의 자식)와 서얼(천민 첩의 자식)의 차별로 이어져 당시 철저했던 유교 신분제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죠.

 

물론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현대인의 몫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생각하지 않고 현대의 잣대로만 생각한다면 어떠한 위인도 꼬투리만 잡으면 악인으로 폄하 될 수 있죠.

글을 마치며..

저는 세종대왕의 노비종모법에 대해서는 진영논리에 따른 것 보단,요즘 만연한 PC사상의 폐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는 현대 사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엄연한 신분제와 노비/노예제도가 수천년 동안 이어져 왔고, 지금도 잔재가 남을만큼 뿌리 깊은 유교를 숭상하던 남존여비의 사회였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지만,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현대의 시각만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편향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하여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폄하하고 비난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분명합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세종대왕님의 최대 업적, 한글 창제에 대한 글을 적어볼까 생각도 해봤으나, 저의 식견이 넓지 않아 좋은 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한글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최근 논란이 되는 주제를 가져와 봤습니다.

저는 사학 전공자가 아니며 단지 역사를 좋아하는 블로거일 뿐입니다. 제 글에 대한 다른 의견이나 지적하실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댓글 적어주세요, 성의껏 답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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